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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라마는 이렇게 말했다 : 인간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다. 그리고 물건은 사용되어지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지금 세상이 혼돈에 빠진 이유는, 물건이 사랑받고 있고 사람들이 사용되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민법에서는 고용주를 사용자로, 노동자를 피용자라고 표현한다. 사장이 노동자를 사용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내 물건을 빌려 쓸 때는 내가 갑이 된다. 조심히 쓰고 돌려줘! 뭐 이런 식이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노동만큼은 다르다. 노동은 빌려 사용하는 사람이 갑이다. 노동을 제공하는 사람은 자연스레 을이 된다. 달라이 라마의 말대로 인간이 사용되고 있다. 동시에 물건을 사랑받는다. 사랑받지 못하는 물건을 파는 회사 직원들은, 자신들의 제품을 사랑받게 만들려고 애쓴다.

 

고백하자면 요즘 나는 이력서를 쓴다. 조까세 일기 초창기엔 백수예찬론을 펼쳤었다. 지금은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백수는 한 달 정도가 딱 좋다. 돈이 썩어나는 사람들도 라이온스 같은 데를 나가서 무슨 직함을 받고 일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한 달을 놀면 뭔가를 하고 싶다. 나는 라이온스 클럽에 나갈 돈이 없으니까, 이력서를 쓴다.

 

자기소개서를 쓰다가, 잠깐 멈춰서 읽다보면 헛웃음이 난다. 조금 더 고상한 표현들을 외피로 삼고 있긴 하지만 결국은 저를 제발 사용해주세요! 하는 식의 구걸이기 때문이다. 지하철에서 자신의 기구한 사연이 담긴 종이를 나눠주며 껌을 파는 사람들과 구직자가 크게 다르지 않다.

 

결국 나 조까세는 이제 지하철 구걸꾼이자, 사용되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찬장의 물건이다. 왜냐하면 구직자이니까. 이 사실을 생각하면 조금은 불행하다. 이게 대다수 현대인들이 직면한 불행이 아닐까? 한다. 소비로는 메워지지 않는 어떤 공허함. 그래서 나는 글을 쓴다. 자기소개서가 아닌 글들을. 그림일기를 쓸 때, 나는 자유롭다. 이걸 쓰기 시작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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