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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때 나는 학급어린이회의에서 매주 같은 건의사항을 냈다. 운동장에 축구골대를 만들어 달라는 건의사항이었다. 이 건의사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마침 2002년 월드컵이 시작됐다. 나는 빨간티를 입고 대한민국을 응원했다. 우리나라가 축구를 잘하면, 학교운동장에 축구골대가 생길 줄 알았다.

 

물론 아니었다.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4강 신화는 초등학교 운동장의 축구골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텔레비전은 외국인들이 붉은 악마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같은 소식으로 떠들썩했다. 어린 나는 초등학교에 축구골대도 안 만들어주는 이따위 나라는 망해버려도 좋다고 생각했다.

 

내 저주가 먹혀들었는지 어땠는지, 한국은 장기적으로 소멸 위기를 맞이했다. 서점에 들렀다가 전영수 교수의 한국이 소멸한다를 잠깐 읽었다. 전영수 교수에 따르면 1200만 명에 이르는 베이비부머들이 은퇴하고 나면, 한국은 경제적 역동성을 잃을 것이란다. 노예무역 때문에 인구의 절반이 신대륙으로 가버린 아프리카와 오늘날의 한국을 비교하면서 인구감소가 곧 경제적 몰락을 가져올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했다.

 

이런! 인구감소 때문에 우리 경제에 위기가 오겠구나! 나라도 얼른 아이를 많이 낳아 애국자가 되어야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공익광고에서는 출산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보험이라는데, 사실은 출산은 보험이 아니라 지출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다지 아름답지 않을 수도 있다.

 

인구가 줄어들어서 국가가 소멸을 한다고 호들갑들을 떠는데, 사실 우리나라의 면적을 생각해보면 지금 인구는 비정상적으로 많다. 올림픽 개막식만 봐도 그렇다. 참가국들의 정보를 보면 대체로 면적은 한반도보다 몇 배로 넓고, 인구는 남한의 반도 안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 그런 나라들은 소멸을 걱정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오늘날 한국이 세계 몇 위의 경제대국이자 무역대국임을 들먹이면서, 강대국 대열에 합류하려면 어쩌고저쩌고하는 장광설을 늘어놓는다.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람. 월드컵 4강에 진출한다고 집 앞에 축구골대가 생기는 게 아니듯, 우리나라가 강대국이 된다고 해도 우리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건 비관이 아니라 낙관이다. 우리 모두는 지금 당장 행복할 수 있다. 소멸하면 소멸하는 거지 뭐. 중요한 건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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