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과 친척들은 내가 회사를 그만뒀다는 걸 모른다. 새해를 맞아서 고향 집에 내려갔다. 용돈도 드렸다. 거 참, 난감한 일이다. 나는 회사생활이 힘들다고 밑밥을 깔아두었다. 언젠가 내가 그만두었다는 사실을 그들이 알게 되었을 때, 놀라지 않도록. 내 어머니는 월급쟁이가 최고라는 사실을 늘 강조하신다. 고도성장기에 청년기를 보내고, 중년에 IMF와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와 같은 세계적인 불황을 목격한 탓이다. 그러면서도 어머니는 ‘우리 젊을 때는 공무원이라고 하면 선도 안 봤다.’면서, 당시 공무원이 얼마나 인기가 없는 직업이었는지를 강조하셨다. 그 시절엔 다들 ‘뭘 몰라서’ 월급쟁이를 선택하지 않았다는 식이다. 무조건 남들보다 일찍 출근하고, 월급이 적어도 불평 갖지 말고…… 뭐 이런 식의 조언도 해주셨..
아침회의가 끝나고, 회사에서 해고당했다. 나한테 너무 버릇이 없단다. 일리가 있는 지적이라 반박하지 못했다. 팀장은 내게 더 겸손해야 많은 걸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이건 개소리다. 겸손하라는 건 자기한테 더 빌빌거리라는 소리다. 그리고 씨바 회사에 돈 벌려고 다니는 거지, 뭔가를 배우려고 다니는 게 아니다. 배움에 대한 열정이 있었으면 대학원에 가서 공부를 더 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어디 경치 좋은 폭포 밑에서 명상을 하지 ― 뭐 하러 아침에 미어터지는 지하철타고 서울까지 기어 들어와서, 입냄새 나는 아줌마랑 회의실에 앉아 이야기를 하겠냐? 엑셀로 인수인계 파일을 만들어서 세 장을 프린트했다. 팀장이랑 담당자한테 인수인계를 해주고 회사를 빠져나왔다. 한강 주변을 걸었다. 걷다가 추워서 버스를 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