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세기동안 인류의 말하기 능력은 발달해왔다. 반면 듣기 능력은? 원숭이 시절이나 21세기나 거의 비슷하다. 인간은 대체로 듣기보다는 말하고 싶어한다. 듣는 건 하기 싫으니까 남들에게 ‘경청’을 강조한다. 자기 말을 들으라는 거다. 이들은 언어능력이 뛰어난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악질이다. 자기는 아무 것도 듣지 않으면서, 경청의 중요성에 대해 몇 시간 일장연설을 늘어놓는다. 더 무시무시한 건, 이런 부류의 인간들이 직장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경우도 허다하다는 점이다. 그 밑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그의 연설 앞에서 그저 고개를 박절기처럼 끄덕끄덕일 수밖에 없다. ‘회의 중(사실은 자기 혼자 얘기하는 시간)에 딴 짓하지 마세요. 경청을 해야 발전해요. 누구누구씨.’ 으악 끔찍해. 이들의 조상은 찐따들이다. ..
소설가 아멜리 노통브는 새벽 4시에 일어나서 글을 쓴다. 누가 시켜서 그러는 게 아니다. 그 시간이 가장 글이 잘 써지기 때문이란다. 괴테 역시 새벽 5시 전에 일어났다고 한다. 그렇다면 위대한 사람들은 모두 아침형 인간인가? 하면 꼭 그렇지도 않다. 희대의 천재 아인슈타인은 하루에 10시간 넘게, 아주 푹 잤다. 왜 우리의 출근시간은 이렇게 9시 또는 8시로 고정되어 버린 것일까? 산업화 이전에 인류는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잠들었다. 그래야 농사를 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공무원복무규정은 농경사회의 관습을 그대로 따랐다. 공무원의 근로시간은 9시부터 18시까지이다. 기업들 역시 공무원들의 근무 시간에 맞추어 그 시간, 또는 그 비슷한 시간으로 출퇴근 시간을 정했다. 개개인의 생체리듬이나 기..
1926년, 열아홉 소년이 조선총독부 사무관 시미켄을 죽였다. 그의 이름은 홍민성. 일제는 그를 잡기 위해 헌병대를 출동시켰다. 홍민성은 평안도 등지에서 숨어 지내다 이듬해 12월 ―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 만주로 향했다. 몇 해 뒤, 그는 항일무장단체 중 하나인 후비대(後備隊)의 총사령관이 되었다. 후비대는 중국 국민당의 지원을 약속받고 산동반도를 향해 행군했는데, 그때 홍민성은 병사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말했다. “조선에 계신 어머니께서 본 사령관을 걱정하고 있다. 그것은 제군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부모님 걱정은 접어둬라. 부모를 생각하지 마라. 조선의 청년들이 단결해서 부모 말을 듣지 않아야 일본을 무찌를 수 있다. 오직 조선 독립, 그 대의를 위해 싸우자.” 홍민성은 이렇게 말하고 난 뒤에..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는 이렇게 말했다 : 바쁘게 일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하느라고 바쁜가?’이다. 바쁨 그 자체가 미덕인 시대가 있었다. 이른바 포디즘(Fordism)의 시대. 만들기만 하면 팔려나갔다. 한국에서는 90년대까지가 이런 시대가 아니었을까? 1987년 민주화와 함께 활발한 소득분배가 일어났고, 마이카 시대가 열리면서 모두가 돈 쓰기 바빴다. 현대차, 삼성전자 같은 기업들도 이때 글로벌 기업이 되었다. 수출을 잘 해서 글로벌 기업이 된 게 아니라, 한국 노동자들이 국산품을 마구 사줘서 성장한 셈이다. 이 시대에는 분명 바쁜 사람이 돈을 벌었다. 하지만 IMF를 기점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 성실하게 일한 직장인들이 해고당했다. 오늘날의 직장인들은 자신의 시간과 건강을 갈..
아침회의가 끝나고, 회사에서 해고당했다. 나한테 너무 버릇이 없단다. 일리가 있는 지적이라 반박하지 못했다. 팀장은 내게 더 겸손해야 많은 걸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이건 개소리다. 겸손하라는 건 자기한테 더 빌빌거리라는 소리다. 그리고 씨바 회사에 돈 벌려고 다니는 거지, 뭔가를 배우려고 다니는 게 아니다. 배움에 대한 열정이 있었으면 대학원에 가서 공부를 더 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어디 경치 좋은 폭포 밑에서 명상을 하지 ― 뭐 하러 아침에 미어터지는 지하철타고 서울까지 기어 들어와서, 입냄새 나는 아줌마랑 회의실에 앉아 이야기를 하겠냐? 엑셀로 인수인계 파일을 만들어서 세 장을 프린트했다. 팀장이랑 담당자한테 인수인계를 해주고 회사를 빠져나왔다. 한강 주변을 걸었다. 걷다가 추워서 버스를 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