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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과 친척들은 내가 회사를 그만뒀다는 걸 모른다. 새해를 맞아서 고향 집에 내려갔다. 용돈도 드렸다. 거 참, 난감한 일이다. 나는 회사생활이 힘들다고 밑밥을 깔아두었다. 언젠가 내가 그만두었다는 사실을 그들이 알게 되었을 때, 놀라지 않도록.

 

내 어머니는 월급쟁이가 최고라는 사실을 늘 강조하신다. 고도성장기에 청년기를 보내고, 중년에 IMF와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와 같은 세계적인 불황을 목격한 탓이다. 그러면서도 어머니는 우리 젊을 때는 공무원이라고 하면 선도 안 봤다.’면서, 당시 공무원이 얼마나 인기가 없는 직업이었는지를 강조하셨다. 그 시절엔 다들 뭘 몰라서월급쟁이를 선택하지 않았다는 식이다. 무조건 남들보다 일찍 출근하고, 월급이 적어도 불평 갖지 말고…… 뭐 이런 식의 조언도 해주셨다. 그렇게 버티다보면 언젠가 짠! 하고 좋은 날이 올 거라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명절마다 듣는 꼰대소리지만, 나는 당신들의 진심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늘 감사하다. 정말이다.

 

감사한 것과는 별개로, 나는 부모님의 조언과는 꼭 반대로 살아나갈 예정이다. 물론 어머니 앞에서 엄마가 뭘 아는데요!’하고 대들 마음은 추호도 없다. 그들 앞에서는 , 잘 알겠습니다.’ 하고 말한 뒤에, 내 마음대로 살아버리면 그만이다. 30년 전에는 말단공무원이라는 직업이 그다지 자랑스럽지 않았듯 백수도 마찬가지다. 지금이야 백수가 별 볼 일 없지만, 몇 십 년 즈음에는 백수가 최고의 선망직업으로 떠오를 것이다. 미래의 부모들은 밥상머리에서 자식들에게 이렇게 이야기 할지 모른다.

 

지금이야 다들 컵밥 먹어가면서 백수 준비하지만, 2018년에만 해도 백수라고 하면 거들떠도 안 봤어.”

 

나는 30년 뒤를 내다보고 유망직종 백수를 선택했다. 개소리라고? 그래 맞다. 씨바. 그래도 백수가 얼마나 좋나? 이렇게 엉덩이 북북 긁으면서 글도 쓸 수 있고, 참 좋은 직업이다. 게다가 복지제도가 점점 좋아지고 있다. 기초생활수급제도나 주거급여제도도 있고, 무료급식소도 지천에 널렸다. 능력도 없는 상사 밑에서 빌빌거리느니, 씨바 그냥 당당한 백수가 되자.

 

만족스러운 급여를 받으며, 자아실현에 가까워지고 있는 멋진 직장인들은 하던 일을 계속해도 좋다. 근데 너! 별 볼일 없는 직장엘 나가면서 다 죽어가는 표정으로 고개 떨구고 핸드폰을 내려다보고 있는 당신. 당신도 동참해라. 백수가 될 용기를 품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고용시장에서 노동자가 사용자를 이기는 유일한 방법이다. 용기를 가지자. 그리고 자빠져 놀자. 우리 그냥 재밌게 살다가 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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