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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사람 중에 응급구조사가 있다. 그다지 친한 사이는 아니라서 이런 내밀한 이야기를 글로 써도 되나 싶지만, 어차피 쓰기 시작했으니까 그냥 계속 쓰겠다. 그가 알려준 바에 따르면, 환자가 응급실에서 살아나는 것보다 죽는 편이 행정적으로 훨씬 편하단다.

 

살아나면 이것저것 써야할게 많아서, 그냥 죽어라, 싶을 때도 있어.”

 

나는 그의 이야기가 적잖이 충격적이었다. 어떻게 응급구조사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쌍욕을 퍼붓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가 비싼 밥을 샀기 때문이다. 나는 최대한 그의 편에 서서 생각해보려고 애썼다. 그 결과, 나는 월급쟁이 비관론자답게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 : 세상에 돈 받고 하는 일은 죄다 좆같다. 그게 사람을 살리는 일이든,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든, 아무튼 뭐든 다 마찬가지다. 나는 소방관도 경찰관도 존경하지만, 그들도 때때로 불끄기 싫고 도둑잡기 짜증날게 분명하다.

 

인간은 원래 지밖에 모른다. 남이야 뒤지든 말든 내 고뿔이 더 성가신 법이다. 이게 이기적인건가? 당연한 거다. 그래서 중책을 맡기려면 합당한 대우를 해주어야한다. 내 친구 응급구조사는 충분한 급여를 받지 못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미래의 행복을 담보한다. 그 덕분에 당장의 이기심을 마취시켜버린다. ‘지금 덜 행복한 대신에 월급 받아서 행복하게 쓰자. 아니면 월급 모아서 행복해지자.’ 이게 월급쟁이 마인드이다. 그런데 우리 노동자들은 당장의 이기심을 접어둘 만큼 합당한 급여를 받고 있는가? 궁금하다. 월급 받던 시절의 나는, 전혀 합당한 대우를 받지 않았다. 안전과 생명을 책임지는 직업군에게조차도, 우리 사회는 충분히 대우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나 같은 슈퍼 인재가 회사를 그만두고, 내 친구 응급구조사는 환자가 그냥 뒤졌으면…… 하는 나쁜 생각을 하고야마는 것이다. 현실이 참 눈물 나게 슬프다.

 

생명을 다루는 직업군에 대해서만큼은 우선적으로 높은 급여와 사회적 대우가 필요하다. 언제까지나 그들에게 직업적인 사명감을 요구할 수 없다. 물론 그 외의 모든 노동자들 역시 합당한 대우를 받아야만 한다. 나만 살면 누군가는 죽어도 좋은 사회는 끔찍하다. 응급구조사도, 의사도, 소방관도, 백수도, 글쟁이도, 장례지도사도…… 모두 살아서, 그리고 서로를 살려서 행복해지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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