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때 나는 학급어린이회의에서 매주 같은 건의사항을 냈다. 운동장에 축구골대를 만들어 달라는 건의사항이었다. 이 건의사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마침 2002년 월드컵이 시작됐다. 나는 빨간티를 입고 대한민국을 응원했다. 우리나라가 축구를 잘하면, 학교운동장에 축구골대가 생길 줄 알았다. 물론 아니었다.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4강 신화는 초등학교 운동장의 축구골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텔레비전은 외국인들이 붉은 악마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같은 소식으로 떠들썩했다. 어린 나는 ‘초등학교에 축구골대도 안 만들어주는 이따위 나라는 망해버려도 좋다’고 생각했다. 내 저주가 먹혀들었는지 어땠는지, 한국은 장기적으로 소멸 위기를 맞이했다. 서점에 들렀다가 전영수 교수의 『한국이 소멸한다』를 잠깐 읽었다..
꼰대들은 어른이라는 단어를 참 좋아한다. 어른스럽게, 어른답게 행동해라, 너도 이제 어른이다 ― 나도 그런 소리를 참 많이 들었다. 올해 스물여덟 살이 되었고, 여러 가지 의미에서 나는 이미 어른이다. 슬프지만 오래 전에 키도 다 자랐다. 경제적으로도 독립했다. 그런데 왜인지 내가 어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어른’이라는 단어는 꼰대들의 전유물로 느껴진다. 그래서 ‘어른’의 어원을 살펴보았다. ‘어른’은 우리말 ‘얼우다’라는 동사에 접미사 ‘-ㄴ이’가 결합되어 만들어진 낱말이다. ‘얼우다’는 동사는 남녀가 교합하다, 즉 섹스하다의 순우리말이다. 우리의 선조들은 섹스만 할 수 있으면 모두 어른으로 보았다. 과거에는 조혼 문화가 팽배해있었으므로, 웬만큼 나이가 차면 너도 어른이고 나도 어른이었다.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