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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까세의 그림일기

#10. 언행일치

조까세 2018. 1. 19. 16:29

평생에 걸쳐 삶의 철학을 이야기했던 들뢰즈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했다. 한편 자살을 택하라, 라는 말도 서슴지 않았던 염세주의자 쇼펜하우어는 장수했다. 평균 수명이 지금에 훨씬 못 미치는 18세기에, 쇼펜하우어는 72세까지 살았다. 인류 지성사에 큰 획을 그은 철학자라는 사람들도 지들이 평생에 걸쳐 주장한 한 것들을 지키지 못한 셈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가장 언행일치를 못하는 사람은 누굴까? 나는 일부출판사 사장들이 생각한다. 독서는 우리 사회 전체가 장려하는 취미이고, 책들은 저마다 죄다 좋은 얘기로 빼곡하다. 역설적이게도 출판계는 노동자 처우가 무척 열악하다. 사회문제가 어쩌구 저쩌구 하는 책을 내는 출판사를 살펴보면 정작 자기 회사는 노동법을 어기면서, 직원들에게 형편없는 급여를 준다.

 

믿기 어렵겠지만, 대학 나온 신입 출판노동자들은 한 달에 200만원도 수령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사장들은 업계 평균을 들먹이면서, 박봉을 당연시 여기는 풍조가 만연해있다. 나는 고졸 직원으로 다른 곳에서 일하다가, 뒤늦게 대학을 나와서 출판계에서 잠깐 일했다. 놀랍게도 급여, 복지, 인간대우 등 모든 면에서 출판계가 아닌 곳에서 고졸로 일하는 편이 훨씬 나았다. 오늘날의 출판업은 시대를 잘 만난 꼰대 하나가 꿈 많은 신입 몇을 쥐어짜내면서 책을 만드는 식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책을 읽어서 우리의 정신이 건강해질 수 있을까? 뭐 책 내용만 좋으면 그럴 수 있다. 공장식 축산으로 키운 소로도 영양소가 풍부한 고기를 생산해낼 수 있으니까. 그럼 됐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 출판사 사장 나부랭이들에게 철학자들도 못해낸 언행일치를 요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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