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장에 갔다가 집에 오는데, 어떤 초등학생이 목청이 찢어지도록 소리를 질러댔다. 횡단보도 건너 편의점 앞에 앉아있는 자기 친구들을 향한 외침이었다. 무슨 일인가 궁금해서 엿들었다. 어린이들은 ‘보이루!’하고 인사를 나누더니 대뜸 이렇게 말했다. “이제 우리의 우정은 끝났어.” 이들은 이렇게 말하면서 악수를 나눴다. 편의점 앞에 앉아있던 쪽이나 횡단보도에서 소리를 지르던 쪽 모두 참담한 표정을 한 채였다. 대만과 국교를 단절했을 때, 한국 외교부 공무원과 대만 대사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처음엔 나는 피식 웃었다. 그들의 절교선언이 유치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뭐 저런 절교선언을 할 만한 일이 있나? 하고 새각했다. 그런데 이 생각을 한 직후, 내가 꼰대스럽게 생각했다는 사실을 알..
초등학생 때 나는 학급어린이회의에서 매주 같은 건의사항을 냈다. 운동장에 축구골대를 만들어 달라는 건의사항이었다. 이 건의사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마침 2002년 월드컵이 시작됐다. 나는 빨간티를 입고 대한민국을 응원했다. 우리나라가 축구를 잘하면, 학교운동장에 축구골대가 생길 줄 알았다. 물론 아니었다.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4강 신화는 초등학교 운동장의 축구골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텔레비전은 외국인들이 붉은 악마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같은 소식으로 떠들썩했다. 어린 나는 ‘초등학교에 축구골대도 안 만들어주는 이따위 나라는 망해버려도 좋다’고 생각했다. 내 저주가 먹혀들었는지 어땠는지, 한국은 장기적으로 소멸 위기를 맞이했다. 서점에 들렀다가 전영수 교수의 『한국이 소멸한다』를 잠깐 읽었다..
걸그룹 트와이스의 팬들 중 일부가 자신들이 ‘1등의 삶’을 살고 있다고 주장했다. 자신들이 1등 걸그룹의 팬이니 당당히 ‘덕질’을 할 수 있고, 따라서 자신들의 삶이 1등의 삶이라는 주장이었다. 이 주장은 조롱거리가 되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어느 걸그룹을 좋아하느냐는 삶과는 그다지 관련이 없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집단이 우월하면 사람들은 곧 자신이 우월하다고 착각한다. 아는 사람 중에 우여곡절 끝에 공무원이 된 사람이 있다. 그는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릴 때마다 ‘#공노비’라는 해쉬태그를 덧붙인다. 지가 속한 집단이 대한민국 정부인 것이 자랑스럽기는 한데, ‘#공무원’이라고 대놓고 쓰면 남사스러우니까 그렇게 쓰나보다. 그래도 자기가 노비인 걸 알아서 다행이다. 노비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1등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