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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정보

낯선 곳에서 나를 만나다

한국문화인류학회 지음 | 일조각 | 2006.08.25


* 조까세의 리뷰

노골적으로 들어난 북미의 인종주의보다 복잡다단한 라틴 아메리카의 인종적 위계가 훨씬 무섭게 작동한다. 무섭다. 북미대륙은 남북전쟁과 노예해방으로 자유를 얻게 된 흑인과, 유럽 이민자들의 후손인 백인으로 단순한 인종적 이분화가 되어있다. 미국인들의 극찬하는 소설 위대한 개츠비를 보면 백인 우월주의자인 톰 뷰캐넌이라는 인물이 유색인종의 제국의 발흥이라는 가상의 책을 평하는 내용이 나온다. 이는 다분히 인종주의적이지만, 적어도 복잡하지는 않다. 백인과 유색인의 대립구도는 단선적이다. 북미에서 행해졌던 유색인과 백인간의 갈등은 골이 깊었지만, 봉합해야할 상처가 너무도 분명했다. 또한 이 인종주의는 서서히 봉합되어가는 과정에 있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 오바마는 바로 이러한 인종갈등의 봉합을 상징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라틴아메리카에서의 인종적 위계는 북미대륙처럼 양분되어 있지 않다. 백인, 인디언 원주민, 흑인들은 활발한 인종통합을 해나가지만 오히려 인종주의는 더욱 강화되는 딜레마에 빠져있다. 그들은 식민지 통치자들이 심어놓은 유럽적 가치관에 완벽히 매몰되어있다. 유럽인에 가까운 피부색과 머리카락을 가지는 것이 지상 목표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들의 인종 간 혼인은 역설적이게도 인종주의의 강화로 이어진다. 미디어는 유럽적 가치관을 전달하고, 이들의 아름다움과 인간미에 대한 기준은 실제 모습과 동떨어진 것이 되어버렸다. 충격적이다.

나는 이 글을 통해, 공공연히 존재하는 차별이 차별임을 깨닫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생각해보았다. 우리는 때때로 차별에 완전히 매료되어,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조차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기존의 위계화된 프레임에서 어떠한 위치에 있는지 지각하기에 앞서, 그 위계가 정당한 것인지를 먼저 생각해보아야 하겠다. 그래야만이 정당치 못한 위계의 프레임을 깨부수고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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