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6년, 열아홉 소년이 조선총독부 사무관 시미켄을 죽였다. 그의 이름은 홍민성. 일제는 그를 잡기 위해 헌병대를 출동시켰다. 홍민성은 평안도 등지에서 숨어 지내다 이듬해 12월 ―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 만주로 향했다. 몇 해 뒤, 그는 항일무장단체 중 하나인 후비대(後備隊)의 총사령관이 되었다. 후비대는 중국 국민당의 지원을 약속받고 산동반도를 향해 행군했는데, 그때 홍민성은 병사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말했다. “조선에 계신 어머니께서 본 사령관을 걱정하고 있다. 그것은 제군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부모님 걱정은 접어둬라. 부모를 생각하지 마라. 조선의 청년들이 단결해서 부모 말을 듣지 않아야 일본을 무찌를 수 있다. 오직 조선 독립, 그 대의를 위해 싸우자.” 홍민성은 이렇게 말하고 난 뒤에..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는 이렇게 말했다 : 바쁘게 일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하느라고 바쁜가?’이다. 바쁨 그 자체가 미덕인 시대가 있었다. 이른바 포디즘(Fordism)의 시대. 만들기만 하면 팔려나갔다. 한국에서는 90년대까지가 이런 시대가 아니었을까? 1987년 민주화와 함께 활발한 소득분배가 일어났고, 마이카 시대가 열리면서 모두가 돈 쓰기 바빴다. 현대차, 삼성전자 같은 기업들도 이때 글로벌 기업이 되었다. 수출을 잘 해서 글로벌 기업이 된 게 아니라, 한국 노동자들이 국산품을 마구 사줘서 성장한 셈이다. 이 시대에는 분명 바쁜 사람이 돈을 벌었다. 하지만 IMF를 기점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 성실하게 일한 직장인들이 해고당했다. 오늘날의 직장인들은 자신의 시간과 건강을 갈..
아는 사람 중에 응급구조사가 있다. 그다지 친한 사이는 아니라서 이런 내밀한 이야기를 글로 써도 되나 싶지만, 어차피 쓰기 시작했으니까 그냥 계속 쓰겠다. 그가 알려준 바에 따르면, 환자가 응급실에서 살아나는 것보다 죽는 편이 행정적으로 훨씬 편하단다. “살아나면 이것저것 써야할게 많아서, 그냥 죽어라, 싶을 때도 있어.” 나는 그의 이야기가 적잖이 충격적이었다. 어떻게 응급구조사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쌍욕을 퍼붓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가 비싼 밥을 샀기 때문이다. 나는 최대한 그의 편에 서서 생각해보려고 애썼다. 그 결과, 나는 월급쟁이 비관론자답게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 : 세상에 돈 받고 하는 일은 죄다 좆같다. 그게 사람을 살리는 일이든,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든, 아무튼 뭐든 다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