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킹족은 얼어붙은 땅에 그린란드라는 이름을, 반대로 사람이 살만한 섬엔 아이슬란드라는 이름을 붙였다. 오늘날 한국에도 ‘바이킹족같은’ 새끼들이 많다. 이를테면 홍대입구의 걷고 싶은 거리. 누가 그런 이름을 붙였는지 몰라도 나는 그 거리를 걷기 싫다. 버스킹 소리가 뒤섞여서 머리는 혼란하고, 사람이 너무 많아서 일행을 잃어버리기 일쑤다. 단연코 우리나라에서 가장 걷기 좆같은 길이 바로 이 길이다. 부산 사하구의 감천문화마을도 그렇다. 거기엔 아무런 문화가 없다. 역사적으로 감천동은 태극도라는 종교를 믿는 신자들이 모여 사는 조용한 신앙촌이다. 그 고요함이 그들의 문화였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시에서 건물마다 벽화를 그려 넣고, 예술이랍시고 빈 집에 설치미술품을 갖다놓은 뒤부터 ― 거기엔 문화가 없다...
음식을 배달시키기에는 너무 추운 날씨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하 19도였다. 그래서 나는 롯데리아를 시켰다. 맛과 가격을 고려해보았을 때 ― 배달부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지 않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는 판단에서였다. 날씨 탓인지 아니면 시간대가 애매해서인지 롯데리아는 배달을 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평소에 먹던 중국집에서 짜장면 탕수육 세트를 주문했다. 1분 정도가 흐른 뒤에 중국집에서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중년 남자 목소리였다. “저기…… 도로명주소로 하면 저희가 찾아가기가 어려워서요. 옛날 번지 주소를 좀 알 수 있을까요?”“저번에 시켰을 때는 그냥 배달해주시던데요.”“아, 그게 오늘은 사정이 좀 있어서요.” 결국 나는 인터넷으로 도로명주소를 옛 주소로 바꾼 뒤에, 중국집에다가 알려주었다. 중국집 사..
꼰대들은 어른이라는 단어를 참 좋아한다. 어른스럽게, 어른답게 행동해라, 너도 이제 어른이다 ― 나도 그런 소리를 참 많이 들었다. 올해 스물여덟 살이 되었고, 여러 가지 의미에서 나는 이미 어른이다. 슬프지만 오래 전에 키도 다 자랐다. 경제적으로도 독립했다. 그런데 왜인지 내가 어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어른’이라는 단어는 꼰대들의 전유물로 느껴진다. 그래서 ‘어른’의 어원을 살펴보았다. ‘어른’은 우리말 ‘얼우다’라는 동사에 접미사 ‘-ㄴ이’가 결합되어 만들어진 낱말이다. ‘얼우다’는 동사는 남녀가 교합하다, 즉 섹스하다의 순우리말이다. 우리의 선조들은 섹스만 할 수 있으면 모두 어른으로 보았다. 과거에는 조혼 문화가 팽배해있었으므로, 웬만큼 나이가 차면 너도 어른이고 나도 어른이었다. 우리..
평생에 걸쳐 삶의 철학을 이야기했던 들뢰즈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했다. 한편 자살을 택하라, 라는 말도 서슴지 않았던 염세주의자 쇼펜하우어는 장수했다. 평균 수명이 지금에 훨씬 못 미치는 18세기에, 쇼펜하우어는 72세까지 살았다. 인류 지성사에 큰 획을 그은 철학자라는 사람들도 지들이 평생에 걸쳐 주장한 한 것들을 지키지 못한 셈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가장 언행일치를 못하는 사람은 누굴까? 나는 ‘일부’ 출판사 사장들이 생각한다. 독서는 우리 사회 전체가 장려하는 취미이고, 책들은 저마다 죄다 좋은 얘기로 빼곡하다. 역설적이게도 출판계는 노동자 처우가 무척 열악하다. 사회문제가 어쩌구 저쩌구 하는 책을 내는 출판사를 살펴보면 정작 자기 회사는 노동법을 어기면서, 직원들에게 형편없는 급여를 준다..
모기가 앵앵거리는 소리는 왜 사람을 짜증나게 할까? 왜냐하면 모기소리에도 아랑곳 않고 자빠져 자던 인간 종(種)들은 모두 말라리아에 걸려서 죽었기 때문이다. 오직 모기소리를 싫어하던 위대한 인류만이 살아남아 우리에게 유전자를 물려주었다. 현대인의 유전자에는 모기소리 혐오증이 단단히 박혀있는 셈이다. 그런데 여기 모기소리보다 더 듣기 싫은 소리가 있다. 바로 직장상사가 앵앵거리는 소리. 직장상사는 스트레스를 퍼뜨린다. 현대사회에서는 모기가 퍼뜨리는 말라리아보다 스트레스가 더 치명적이다. 직장상사가 앵앵거리는 소리가 그다지 짜증나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당신은 모기소리를 무시하고 자빠져 자던 원시인류처럼 멸종해버릴 것이다. 화병에 걸리거나, 스트레스성 질병에 시달리고, 극단적인 경우엔 자살을 해버릴 지도 모른..
영화 를 본 사람이라면 이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 내일 주가가 오를지, 내릴지는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고 하느님도 모르고 아무도 몰라. 그러니까 우리 코카인을 빨자! 섹스를 많이 하자! 그리곤 가슴팍을 치면서 ― 으음~ (팡팡) 으음~(팡팡) 으으으으음(팡팡) 나는 이 장면을 보고 싶어서 이 세 시간짜리 영화를 몇 번이나 봤다. 이것보다 더 인생의 진리를 명징하게 일러주는 장면이 있는가? 우리가 예측하지 못하는 것은 주가뿐만이 아니다. 내일 아침 날씨는 어떨지, 상사의 기분은 어떨지, 남극의 빙하는 무사할지, 평창올림픽에 북한이 참여할지 등등…… 우리는 모른다. 아는 건 하나 뿐이다. 아무 것도 모른다는 사실, 딱 그거 하나. 내일 점심시간에 제육볶음을 먹고 사무실로 돌아갈 때 즈음, 북한 김정은이 퉁..
수세기동안 인류의 말하기 능력은 발달해왔다. 반면 듣기 능력은? 원숭이 시절이나 21세기나 거의 비슷하다. 인간은 대체로 듣기보다는 말하고 싶어한다. 듣는 건 하기 싫으니까 남들에게 ‘경청’을 강조한다. 자기 말을 들으라는 거다. 이들은 언어능력이 뛰어난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악질이다. 자기는 아무 것도 듣지 않으면서, 경청의 중요성에 대해 몇 시간 일장연설을 늘어놓는다. 더 무시무시한 건, 이런 부류의 인간들이 직장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경우도 허다하다는 점이다. 그 밑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그의 연설 앞에서 그저 고개를 박절기처럼 끄덕끄덕일 수밖에 없다. ‘회의 중(사실은 자기 혼자 얘기하는 시간)에 딴 짓하지 마세요. 경청을 해야 발전해요. 누구누구씨.’ 으악 끔찍해. 이들의 조상은 찐따들이다. ..
소설가 아멜리 노통브는 새벽 4시에 일어나서 글을 쓴다. 누가 시켜서 그러는 게 아니다. 그 시간이 가장 글이 잘 써지기 때문이란다. 괴테 역시 새벽 5시 전에 일어났다고 한다. 그렇다면 위대한 사람들은 모두 아침형 인간인가? 하면 꼭 그렇지도 않다. 희대의 천재 아인슈타인은 하루에 10시간 넘게, 아주 푹 잤다. 왜 우리의 출근시간은 이렇게 9시 또는 8시로 고정되어 버린 것일까? 산업화 이전에 인류는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잠들었다. 그래야 농사를 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공무원복무규정은 농경사회의 관습을 그대로 따랐다. 공무원의 근로시간은 9시부터 18시까지이다. 기업들 역시 공무원들의 근무 시간에 맞추어 그 시간, 또는 그 비슷한 시간으로 출퇴근 시간을 정했다. 개개인의 생체리듬이나 기..
1926년, 열아홉 소년이 조선총독부 사무관 시미켄을 죽였다. 그의 이름은 홍민성. 일제는 그를 잡기 위해 헌병대를 출동시켰다. 홍민성은 평안도 등지에서 숨어 지내다 이듬해 12월 ―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 만주로 향했다. 몇 해 뒤, 그는 항일무장단체 중 하나인 후비대(後備隊)의 총사령관이 되었다. 후비대는 중국 국민당의 지원을 약속받고 산동반도를 향해 행군했는데, 그때 홍민성은 병사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말했다. “조선에 계신 어머니께서 본 사령관을 걱정하고 있다. 그것은 제군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부모님 걱정은 접어둬라. 부모를 생각하지 마라. 조선의 청년들이 단결해서 부모 말을 듣지 않아야 일본을 무찌를 수 있다. 오직 조선 독립, 그 대의를 위해 싸우자.” 홍민성은 이렇게 말하고 난 뒤에..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는 이렇게 말했다 : 바쁘게 일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하느라고 바쁜가?’이다. 바쁨 그 자체가 미덕인 시대가 있었다. 이른바 포디즘(Fordism)의 시대. 만들기만 하면 팔려나갔다. 한국에서는 90년대까지가 이런 시대가 아니었을까? 1987년 민주화와 함께 활발한 소득분배가 일어났고, 마이카 시대가 열리면서 모두가 돈 쓰기 바빴다. 현대차, 삼성전자 같은 기업들도 이때 글로벌 기업이 되었다. 수출을 잘 해서 글로벌 기업이 된 게 아니라, 한국 노동자들이 국산품을 마구 사줘서 성장한 셈이다. 이 시대에는 분명 바쁜 사람이 돈을 벌었다. 하지만 IMF를 기점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 성실하게 일한 직장인들이 해고당했다. 오늘날의 직장인들은 자신의 시간과 건강을 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