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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킹족은 얼어붙은 땅에 그린란드라는 이름을, 반대로 사람이 살만한 섬엔 아이슬란드라는 이름을 붙였다. 오늘날 한국에도 바이킹족같은새끼들이 많다. 이를테면 홍대입구의 걷고 싶은 거리. 누가 그런 이름을 붙였는지 몰라도 나는 그 거리를 걷기 싫다. 버스킹 소리가 뒤섞여서 머리는 혼란하고, 사람이 너무 많아서 일행을 잃어버리기 일쑤다. 단연코 우리나라에서 가장 걷기 좆같은 길이 바로 이 길이다.

 

부산 사하구의 감천문화마을도 그렇다. 거기엔 아무런 문화가 없다. 역사적으로 감천동은 태극도라는 종교를 믿는 신자들이 모여 사는 조용한 신앙촌이다. 그 고요함이 그들의 문화였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시에서 건물마다 벽화를 그려 넣고, 예술이랍시고 빈 집에 설치미술품을 갖다놓은 뒤부터 거기엔 문화가 없다. ‘문화라는 팻말만 남았다.

 

감천문화마을을 대표하는 조형물이 어린왕자와 사막여우라는 점이 모든 것을 설명해준다. 어린왕자와 감천문화마을은 도대체 무슨 문화적 연관성이 있나? 생전에 생텍쥐페리가 감천동에서 돼지국밥 한 그릇 뚝딱 비우고, '억수로 맛있네예' 하면서 사인이라도 남기고 갔나? 그렇지 않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거기에 줄을 서서 사진을 찍는다. 이유는 없다. 그냥 다른 사람들이 찍으니까, 이게 문화라니까. 나는 고향이 부산이라, 종종 부산 관광에 대한 질문을 받곤 한다. 그러면 이렇게 답한다 : 감천문화마을만 안 가면 절반은 성공이라고.

 

사람들은 이미 이름 붙여진 것들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먹고 살기 너무 바쁘기 때문이다. 권력자들은 이를 악이용한다. 밤길을 걷다가 아리랑치기를 당할 것 같은 후미진 골목길에는 어김없이 집중순찰구역’, ‘여성안심귀갓길팻말을 붙인다. 그런 이름이 붙은 길은 위험한 길이다. 부장은 시답잖은 일에도 이름 붙이고, 장기적인 플랜을 짜길 좋아한다. 그들은 우리의 업무와 책임을 한정 짓는 것이다. 아무런 의문을 갖지 말고 그냥 시키는 대로 해라! 이게 이름 붙일 수 없는 자들에게 주어진 사명이다.

 

권력자들에 의해 선점되고 명명된 것들은 우리를 바보로 만든다. 우리는 어느 순간, ‘문화마을이라는 이름만 믿고 거기서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서는 멍청한 관광객 중 하나가 된다. 모든 이름 붙은 것들을 의심하자! 사무엘 베케트가 말했던 것처럼, 이제 모든 것들을 가설로, 질문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우리는 제대로 알 수 있게 된다. 진정으로 우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쟁취하여야하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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