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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까세의 그림일기

#15. 무당, 거짓말

조까세 2018. 1. 29. 15:53

무당이 진행하는 인터넷 방송을 봤다. 사람은 죽으면 혼령이 되어 구천을 떠돈단다. 시청자 한 사람이 무당에게 물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죽는데, 혼령의 세계는 인구밀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지는 것이 아니냐고. 그러자 무당이 답했다.

맞습니다. 구천에 귀신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어요. 그리고 영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죠. 그래서 정신병원에 사람들이 득실거리는 겁니다.”

그는 무당 특유의 매서운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 랜선을 타고 살이라도 날라 올 기세였다. 그런데 나는 왜인지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세상에 귀신이 어딨냐 씨바!’ 나는 이렇게 말하고 도망쳤다. 다행히도 살은 날아오지 않았다.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는다. 이 표현은 매우 옳다. 거짓말이 새로운 거짓말을 낳을때는 어떤 산통 같은 것이 느껴진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괴롭다. 때문에 거짓말을 많이 하는 사람들은 리플리 증후군에 걸린다. 스스로 거짓말을 진실이라고 믿지 않으면 괴롭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거짓말을 하면서도 고통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끊임없이 알을 낳는 닭처럼 거짓말을 생산해나갈 뿐이다.

 

불행히도 나는 거짓말을 아무리 해도 리플리 증후군에는 걸리지 못하는 체질을 가졌다. 나는 부모님께, 아직 회사를 다니고 있다는 거짓말을 한다. 거짓말 속의 나는 직장에서 스트레스도 겪고 있고, 비록 적지만 월급도 꼬박꼬박 받으며, 직장동료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눈다. 어떤 이야기를 하는데? 이런 식의 질문을 받으면 또 새로운 거짓말을 한다. 거짓말은 그렇게 새로운 거짓말을 출산한다. 순산 축하드립니다. 왕자님이네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나는 새로 태어난 거짓말을 안아든다. 나는 그렇게 거짓말의 아버지가 되고, 할아버지가 된다.

 

자취방으로 돌아오면서, 부모님께 내가 했던 거짓말들을 멀리 입양 보냈다. 하지만 영하의 바람이 부는 날, 집 앞 놀이터에서 나는 내가 했던 거짓말들과 마주쳐서 소스라치게 놀라곤 한다. 그러면 이렇게 뇌까린다. 아이고! 네가 그 거짓말이구나, 벌써 이렇게 컸네. 못 알아보겠구나. ……이래저래 미안하다. 용돈 줄 테니까, 이걸로 맛있는 거 사먹고 공부 열심히 하거라. 뭐든지 열심히 하는 것이 중요하단다.

 

내가 낳은 거짓말들은 무럭무럭 자라서 무엇이 될까?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겁이 난다. 내가 낳은 거짓말들이 모두 죽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구천을 떠도는 혼령이나 되어버렸으면.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오직 진실만을 말하는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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