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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캔들에 휘말렸다가 복귀한 어느 연예인이 이런 인터뷰를 했다.
“하루는 딸이랑 식당엘 갔는데, 메뉴판에 가격표를 살피는 저를 발견했어요. 그때는 정말 내가 불행하구나! 싶었어요.”
나는 인터뷰의 이 구절을 보고 그가 나와는 정말 다른 세계에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탈세나 표절을 한 적 없고, 스포츠도박에도 관심이 없으며, 군복무도 성실히 이행했음에도 ― 식당에 들어가면 메뉴판에 가격을 살핀다. 그런데도 나는 내가 불행한 줄 몰랐다.
아무튼 나는 이 인터뷰를 읽고 세상이 뭔가 불공평하다는 생각을 존나 했다. 그리고 돈과 행복의 상관관계에 대해 생각하다가 이런 결론을 내렸다 : 돈이 없어도 행복할 수 있다. 근데 그게 가능한 사람은, 돈이 있으면 더 행복할 것이다.
요즈음 나는 돈을 벌지 않는다. 노니까 자유롭고, 행복하다. 그러나 돈이 없으면 자유는 얼마간 제약을 받는다. 돈이 없으면 제대로 소비할 수 없고, 우리 사회에서 소비하지 않고 생활을 영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금융자산이 없는 사람은 오직 노동으로만 돈을 벌 수 있다. 노동은 곧 내 자유의 일부를 기업에 종속시키는 걸 의미한다. 노동을 통해 번 돈으로 우리는 무얼 얻는가? 그것 역시 자유다. 소비할 수 있는 자유! 그런데 노동자가 월급으로 누리는 자유가 진정한 자유일까?
자유라고 이름 붙여진 것들에는 질적 차이가 있다. 블룸버그 같은데 소개되는 부자들은 천문학적으로 자유롭다. 2017년 연말 기준 빌게이츠의 자산은 913억 달러, 우리 돈 98조다. 작정하고 매일 새 포르쉐를 사도 죽을 때 돈이 남을 것이다. 그런데도 빌게이츠는 일한다. 돈을 벌려고 일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재밌고, 하고 싶으니까 하는 거다. 빌게이츠에게는 넘치는 자유가 있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자유! 이것은 자본권력이 짜놓은 틀 안에서 단순히 소비하기만 하는 자유 그 이상의 것이다.
백수인 내가 누리는 자유는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는 자유’이다. 이건 가장 수준 낮은 자유다. 그런데 어떤 노동자들에게는 이 자유조차 없다. 그들은 한 순간의 소비를 위해 모든 자유를 유예한다. 현명한 백수는 멍청한 노동자보다 낫다. 그렇지만 백수는 지속가능하지 않으므로, 적당히 노동하고 백수가 되고, 또 적당히 노동하고 백수가 되는 편이 가장 좋다. 아니면 백수처럼 자유로운 노동자가 되는 것도 매우 좋은데 ― 이건 어지간한 멘탈로는 힘들다.
백수도 노동자도 스캔들에 휘말린 연예인도 빌게이츠도, 결국 최종의 목표는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자유’ 가 아닐까? 퇴근길 지하철에 가득찬 이 수많은 사람들이 ― 모두 저마다의 자유를 품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저릿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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