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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까세의 그림일기

#18. 천명관

조까세 2018. 2. 1. 17:19

온라인서점 면접에서, 면접관이 내게 물었다.

제일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에요?”

천명관이요.”

내가 말했다. 그러자 면접관이 목에 핏대를 세웠다. 그는 천명관이 구린 소설가라고 깠다. 천명관은 고래빼고는 별 볼 일 없단다. 진정으로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자기만 아는 숨은 진주’(면접관의 표현)같은 작가 이름을 댔어야한다고 내게 조언했다. 그러면서 자기는 박 뭐시기 작가를 좋아하는데, 사람들이 아무도 모르고 자기만 좋아한단다. 전형적인 홍대병 말기 환자라고 생각했지만, 뭐 어쩔 수 없었다. 그 새끼가 갑이니까. 나는 그래도 붙여주세요, 이제 천명관 안 좋아할게요. 제발요 하는 눈빛을 그에게 쏘아댔다. 물론 소용없는 짓이었다.

 

나는 천명관을 원망했다. 면접 분위기 좋았는데, 천명관 때문에 떨어졌다 씨바! …… 책 좀 읽는다는 사람들에겐 구린 소설가였구나! 꼭 가고 싶었던 회사에서 떨어졌던 탓에 상심이 컸다. 그러던 중에 얼마 전부터 인천에 갈 일이 생겼다. 나는 지하철에서 읽기 위해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를 챙겼다. 공항철도와 인천2호선에서, 나는 그 소설을 단숨에 읽었다.

 

취향에 서열을 매기는 건 옳지 않다. 자기 취향이 있는 건 인정할 수 있지만, 그걸 강요하는 것은 나쁘다. 그런 사람들이 높은 자리에 오르면 독재자가 된다. 독재라는 게 별 대단한 게 아니다. 남들이 뭐라고 생각하든 자기 취향대로 하는 게 독재다. 중국집에서 뭐 먹을지 안 물어보고, 여기 탕수육 큰 거 하나랑요 쟁반짜장 주시고, 앞접시 하나씩 갖다주세요 라고 말하는 직장상사가 있다면? 그 사람이 독재자다.

 

끝으로 덧붙이자면 천명관 소설들은 좋은 소설이다. 다음에 누군가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를 묻는데도 나는 천명관이라고 말하겠다. 그는 고래로 가장 유명하지만 나의 삼촌 브루스리고령화 가족도 진심 띵작이다. 단편들도 하나같이 재밌다. 인간의 실패담을 이렇게 추잡하고 익살스럽게 풀어내는 소설은 당분간 우리 문학사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그 홍대병 환자가 알려준 박 뭐시기 작가 책도 읽어봤는데, 천명관만 못하다. 취향에 서열을 매기는 건 옳지 않지만, 아무튼 천명관이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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