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조까세의 그림일기

#1. 퇴사

조까세 2018. 1. 8. 16:13


아침회의가 끝나고, 회사에서 해고당했다. 나한테 너무 버릇이 없단다. 일리가 있는 지적이라 반박하지 못했다. 팀장은 내게 더 겸손해야 많은 걸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이건 개소리다. 겸손하라는 건 자기한테 더 빌빌거리라는 소리다. 그리고 씨바 회사에 돈 벌려고 다니는 거지, 뭔가를 배우려고 다니는 게 아니다. 배움에 대한 열정이 있었으면 대학원에 가서 공부를 더 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어디 경치 좋은 폭포 밑에서 명상을 하지 뭐 하러 아침에 미어터지는 지하철타고 서울까지 기어 들어와서, 입냄새 나는 아줌마랑 회의실에 앉아 이야기를 하겠냐?

 

엑셀로 인수인계 파일을 만들어서 세 장을 프린트했다. 팀장이랑 담당자한테 인수인계를 해주고 회사를 빠져나왔다. 한강 주변을 걸었다. 걷다가 추워서 버스를 탔다.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잘랐다. 회사에 잘리고 오는 길이라고 하니깐, 원장님이 헤어스파를 서비스로 해줬다. 시원했다. 원장은 신촌에 있는 미용실에서 스텝으로 일하던 시절, 월급 명세서를 받고나서 미용실을 뒤집어엎은 얘기를 해댔다.


저녁에는 안암에서 친구들을 만났다. 대학을 졸업하고 안암에서 논 건 처음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안암에 있는 대학을 나온 것은 아니다. 나는 지잡대 나왔다) 내가 잘렸다고 하니 걱정해주는 사람이 정말 많다. 비록 직장생활에서 실패했지만, 곁에 좋은 사람이 많으니 인생은 성공한 것이 아니냐 하고 말했더니 친구가 나를 병신이라고 욕했다. 이제는 인생에서 직장생활이 가장 중요한 나이가 아니냐면서. 우리도 곧 서른이야. 나는 그 얘기를 듣고 웃었다.

 

집에 오는 길에 생각해봤다. 그리곤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 : 인생에 직장생활 따위가 가장 중요한 시기는 없다. 인간은 사랑하는 사람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더 많이 웃기 위해 살아야한다. 직장을 사랑하고 동료들과도 함께 웃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할 수도 있다. 다 씨바 행복하자고 하는 일이다. 돈을 버는 이유는, 그것을 소비할 때 얻는 행복감 때문이다. 이제 나는 돈을 안 번다. 그러면 좀 덜 쓰고 행복하면 된다. 돈을 못 쓰면 글이라도 쓰면 좀 낫지 않을까? 싶어서 이렇게 글을 써본다. 이제 나는 이렇게 살 거다.

 

……실은 다 정신승리다. 사실 불안하다. 부모님께도 아직은 비밀이다. .


그런데 나는 겸손하고 배우는 자세로 직장을 다닐 마음이 없다. 나는 내 마음대로 살 거다! 언젠가 이 글을 다시 읽고 이불킥을 해도 상관없다. 나는 행복하게 살겠다. 젊음은 원래 도전하라고 있는 거다. 병신 같은 결론이고, 아전인수인거 안다. 근데 아전인수가 뭐 잘못됐나? 씨바 내 논에 물 대지 누구 논에 물 대냐

 

'조까세의 그림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6. 출근 시간은 왜 9시일까?  (9) 2018.01.15
#5. 독립하세요  (11) 2018.01.12
#4. 바쁘세요?  (5) 2018.01.11
#3. 응급구조사의 딜레마  (2) 2018.01.10
#2. 재밌게 살다가 죽자  (2) 2018.01.09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