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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까세의 그림일기

#5. 독립하세요

조까세 2018. 1. 12. 16:06


1926, 열아홉 소년이 조선총독부 사무관 시미켄을 죽였다. 그의 이름은 홍민성. 일제는 그를 잡기 위해 헌병대를 출동시켰다. 홍민성은 평안도 등지에서 숨어 지내다 이듬해 12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 만주로 향했다. 몇 해 뒤, 그는 항일무장단체 중 하나인 후비대(後備隊)의 총사령관이 되었다. 후비대는 중국 국민당의 지원을 약속받고 산동반도를 향해 행군했는데, 그때 홍민성은 병사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말했다.

 

조선에 계신 어머니께서 본 사령관을 걱정하고 있다. 그것은 제군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부모님 걱정은 접어둬라. 부모를 생각하지 마라. 조선의 청년들이 단결해서 부모 말을 듣지 않아야 일본을 무찌를 수 있다. 오직 조선 독립, 그 대의를 위해 싸우자.

 

홍민성은 이렇게 말하고 난 뒤에 오열하며 애국가를 열창했다. 진짜냐고? 다 거짓말이다. 시미켄은 일본 AV배우고, 홍민성은 내 고등학교 때 친구 이름이다. 어떤가, 그래도 좀 그럴싸하지 않은가? 조국의 독립 같은 위대한 일을 해내기 위해서는 부모님한테 알려서는 안 된다.

 

어머니, 저 독립군에 합류하겠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어머니가, ‘아이고 우리 아들 장하다! (엉덩이 토닥토닥) 가는 길에 총부터 사고, 남는 돈으로 함흥 들러서 냉면 한 그릇 해라!’ 하면서 엽전 뭉치를 건네주실까? 절대 그렇지 않다. 부모님들은 우리를 그 자체로 너무 사랑하신다. 그래서 우리가 인생을 걸고 뭔가를 쟁취하려는 꼴을 못 본다. 위대함을 쟁취하는 데에는, 꼭 그만큼의 위험이 따르는 법이니까. 때문에 부모님들은 그냥 공무원 해라, 취직해라 이런 얘기를 늘어놓는다. 그런 것들은 위험하지도 위대하지도 않으니까.

 

80년대 대학생의 부모들도 이유야 어쨌든 데모하지 마라고 자식들을 타일렀다. 이때 부모 말을 안 듣고 데모하러 나간반항아들이 민주주의를 쟁취했다. 정말이지 위대한 분들이다. 산업화 과정도 마찬가지였다. 현대그룹 창업주인 정주영 역시 부모님 말을 오지게 안 들었다. 정주영은 농사를 안 짓고 가출해버린다. 그리곤 아도서비스라는 자동차 정비소에서 일했다. 길가에 자동차가 하나도 없던 시절이다. 농본주의 사회를 살아오던 정주영의 부모님은 어떤 생각을 했겠는가? 거 참,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농사를 지을 생각을 해야지 쯧쯧, 하면서 혀를 찼을 게 분명하다.

 

나도 위대해지고 싶다. 그래서 회사를 그만두고도 부모님께 말하지 않았다. 이제 내게는 위대해질 시간만 남아있다. , 시간. 내게는 시간이 아주 많다. 그런데 나는 뭘로 위대해지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여기까지 쓴 뒤에 짜파게티를 하나 끓여먹고 왔다. 먹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 모든 위대한 사람들은 부모 말을 안 들었지만, 부모 말을 안 듣는다고 모두 위대해지는 건 아니다. 생각해보면 동네 양아치들도 부모님 말을 오질나게 안 들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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