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에 걸쳐 삶의 철학을 이야기했던 들뢰즈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했다. 한편 자살을 택하라, 라는 말도 서슴지 않았던 염세주의자 쇼펜하우어는 장수했다. 평균 수명이 지금에 훨씬 못 미치는 18세기에, 쇼펜하우어는 72세까지 살았다. 인류 지성사에 큰 획을 그은 철학자라는 사람들도 지들이 평생에 걸쳐 주장한 한 것들을 지키지 못한 셈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가장 언행일치를 못하는 사람은 누굴까? 나는 ‘일부’ 출판사 사장들이 생각한다. 독서는 우리 사회 전체가 장려하는 취미이고, 책들은 저마다 죄다 좋은 얘기로 빼곡하다. 역설적이게도 출판계는 노동자 처우가 무척 열악하다. 사회문제가 어쩌구 저쩌구 하는 책을 내는 출판사를 살펴보면 정작 자기 회사는 노동법을 어기면서, 직원들에게 형편없는 급여를 준다..
모기가 앵앵거리는 소리는 왜 사람을 짜증나게 할까? 왜냐하면 모기소리에도 아랑곳 않고 자빠져 자던 인간 종(種)들은 모두 말라리아에 걸려서 죽었기 때문이다. 오직 모기소리를 싫어하던 위대한 인류만이 살아남아 우리에게 유전자를 물려주었다. 현대인의 유전자에는 모기소리 혐오증이 단단히 박혀있는 셈이다. 그런데 여기 모기소리보다 더 듣기 싫은 소리가 있다. 바로 직장상사가 앵앵거리는 소리. 직장상사는 스트레스를 퍼뜨린다. 현대사회에서는 모기가 퍼뜨리는 말라리아보다 스트레스가 더 치명적이다. 직장상사가 앵앵거리는 소리가 그다지 짜증나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당신은 모기소리를 무시하고 자빠져 자던 원시인류처럼 멸종해버릴 것이다. 화병에 걸리거나, 스트레스성 질병에 시달리고, 극단적인 경우엔 자살을 해버릴 지도 모른..
영화 를 본 사람이라면 이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 내일 주가가 오를지, 내릴지는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고 하느님도 모르고 아무도 몰라. 그러니까 우리 코카인을 빨자! 섹스를 많이 하자! 그리곤 가슴팍을 치면서 ― 으음~ (팡팡) 으음~(팡팡) 으으으으음(팡팡) 나는 이 장면을 보고 싶어서 이 세 시간짜리 영화를 몇 번이나 봤다. 이것보다 더 인생의 진리를 명징하게 일러주는 장면이 있는가? 우리가 예측하지 못하는 것은 주가뿐만이 아니다. 내일 아침 날씨는 어떨지, 상사의 기분은 어떨지, 남극의 빙하는 무사할지, 평창올림픽에 북한이 참여할지 등등…… 우리는 모른다. 아는 건 하나 뿐이다. 아무 것도 모른다는 사실, 딱 그거 하나. 내일 점심시간에 제육볶음을 먹고 사무실로 돌아갈 때 즈음, 북한 김정은이 퉁..
소설가 아멜리 노통브는 새벽 4시에 일어나서 글을 쓴다. 누가 시켜서 그러는 게 아니다. 그 시간이 가장 글이 잘 써지기 때문이란다. 괴테 역시 새벽 5시 전에 일어났다고 한다. 그렇다면 위대한 사람들은 모두 아침형 인간인가? 하면 꼭 그렇지도 않다. 희대의 천재 아인슈타인은 하루에 10시간 넘게, 아주 푹 잤다. 왜 우리의 출근시간은 이렇게 9시 또는 8시로 고정되어 버린 것일까? 산업화 이전에 인류는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잠들었다. 그래야 농사를 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공무원복무규정은 농경사회의 관습을 그대로 따랐다. 공무원의 근로시간은 9시부터 18시까지이다. 기업들 역시 공무원들의 근무 시간에 맞추어 그 시간, 또는 그 비슷한 시간으로 출퇴근 시간을 정했다. 개개인의 생체리듬이나 기..
책은 다른 매체들과 달리 어떤 ‘신성한 권위’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책이 유일한 정보전달매체이던 시대의 관습 때문이다. 불과 몇 백 년 전까지만 해도 책은 최첨단 매체였다. 조선에서는 중국을 방문한 사신들은 열 권 남짓한 책을 천자에게 하사받았고, 그것을 가져다가 조선 왕부터 양반에 이르기까지 아주 조심스럽게, 그것도 필사를 해가면서 읽었다. 그 시대의 도서관은 첨단 정보를 저장해놓은 곳으로 ― 오늘날의 슈퍼컴퓨터 같은 역할을 했다. 고로 아무나 들어갈 수도 없었다. 오늘날의 책은 어떤가? 책은 점차 ‘신성한 권위’를 잃어나가는 중이다. 인쇄술이 발달하고, 문자는 대중화되었다. 도서관 역시 개방되었다. 이제 사람들은 누워서 트림을 하면서, 방귀를 끼면서도 책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뒤로, 책보다 접..
1926년, 열아홉 소년이 조선총독부 사무관 시미켄을 죽였다. 그의 이름은 홍민성. 일제는 그를 잡기 위해 헌병대를 출동시켰다. 홍민성은 평안도 등지에서 숨어 지내다 이듬해 12월 ―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 만주로 향했다. 몇 해 뒤, 그는 항일무장단체 중 하나인 후비대(後備隊)의 총사령관이 되었다. 후비대는 중국 국민당의 지원을 약속받고 산동반도를 향해 행군했는데, 그때 홍민성은 병사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말했다. “조선에 계신 어머니께서 본 사령관을 걱정하고 있다. 그것은 제군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부모님 걱정은 접어둬라. 부모를 생각하지 마라. 조선의 청년들이 단결해서 부모 말을 듣지 않아야 일본을 무찌를 수 있다. 오직 조선 독립, 그 대의를 위해 싸우자.” 홍민성은 이렇게 말하고 난 뒤에..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는 이렇게 말했다 : 바쁘게 일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하느라고 바쁜가?’이다. 바쁨 그 자체가 미덕인 시대가 있었다. 이른바 포디즘(Fordism)의 시대. 만들기만 하면 팔려나갔다. 한국에서는 90년대까지가 이런 시대가 아니었을까? 1987년 민주화와 함께 활발한 소득분배가 일어났고, 마이카 시대가 열리면서 모두가 돈 쓰기 바빴다. 현대차, 삼성전자 같은 기업들도 이때 글로벌 기업이 되었다. 수출을 잘 해서 글로벌 기업이 된 게 아니라, 한국 노동자들이 국산품을 마구 사줘서 성장한 셈이다. 이 시대에는 분명 바쁜 사람이 돈을 벌었다. 하지만 IMF를 기점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 성실하게 일한 직장인들이 해고당했다. 오늘날의 직장인들은 자신의 시간과 건강을 갈..
아는 사람 중에 응급구조사가 있다. 그다지 친한 사이는 아니라서 이런 내밀한 이야기를 글로 써도 되나 싶지만, 어차피 쓰기 시작했으니까 그냥 계속 쓰겠다. 그가 알려준 바에 따르면, 환자가 응급실에서 살아나는 것보다 죽는 편이 행정적으로 훨씬 편하단다. “살아나면 이것저것 써야할게 많아서, 그냥 죽어라, 싶을 때도 있어.” 나는 그의 이야기가 적잖이 충격적이었다. 어떻게 응급구조사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쌍욕을 퍼붓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가 비싼 밥을 샀기 때문이다. 나는 최대한 그의 편에 서서 생각해보려고 애썼다. 그 결과, 나는 월급쟁이 비관론자답게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 : 세상에 돈 받고 하는 일은 죄다 좆같다. 그게 사람을 살리는 일이든,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든, 아무튼 뭐든 다 마..
아침회의가 끝나고, 회사에서 해고당했다. 나한테 너무 버릇이 없단다. 일리가 있는 지적이라 반박하지 못했다. 팀장은 내게 더 겸손해야 많은 걸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이건 개소리다. 겸손하라는 건 자기한테 더 빌빌거리라는 소리다. 그리고 씨바 회사에 돈 벌려고 다니는 거지, 뭔가를 배우려고 다니는 게 아니다. 배움에 대한 열정이 있었으면 대학원에 가서 공부를 더 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어디 경치 좋은 폭포 밑에서 명상을 하지 ― 뭐 하러 아침에 미어터지는 지하철타고 서울까지 기어 들어와서, 입냄새 나는 아줌마랑 회의실에 앉아 이야기를 하겠냐? 엑셀로 인수인계 파일을 만들어서 세 장을 프린트했다. 팀장이랑 담당자한테 인수인계를 해주고 회사를 빠져나왔다. 한강 주변을 걸었다. 걷다가 추워서 버스를 탔다. ..